
대한민국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 한때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와 함께 국산 PC 게임의 자존심으로 손꼽혔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게이머들의 가슴 속에 ‘내 생에 첫 번째 한글 RPG’로 기억되고 있는 게임.
바로 그 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Astonishia Story)가 오는 23일, 1편 출시 이후 장장 14년 만에 정식으로 후속작이 출시된다. 아이언노스가 개발하고 엔트리브소프트에서 유통하는 PSP용 롤플레잉 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다.
디스이즈게임은 2편의 출시를 앞두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 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1부는 지금까지 발매된 <어스토>시리즈의 과거를 돌아보는 기획이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 TIG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 특집 기사 보는 순서
① 기획 → ② 영상 프리뷰 → ③ 손노리 원년멤버 대담(1부) → ④ 프리뷰
| ‘전설’의 시작: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1994년) |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4년 여름, 신생 개발사 ‘손노리’(Sonnori)에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라는 긴 이름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5장짜리 롤플레잉 게임(RPG)을 선보였다.
개발 기간 1년에 추정 개발비 300만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시간과 노력이 담긴, 그리고 프로그래머는 완성도가 부끄럽다고 엔딩 크래딧에 자신의 이름을 넣기 거부하려고 했다는 이 게임은, 발매와 함께 그대로 대한민국 게임의 전설이 되고 만다.

1994년 잡지 광고.
사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이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RPG는 비주류였다. 심지어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조차 ‘생소한 장르’, ‘어려운 장르’라는 인식이 파다했는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글’로 즐길 수 있는 RPG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한글 RPG’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구체적인 판매량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품은 10만장 이상. 그리고 PC통신을 통해 퍼져나간 불법복제 버전은 20만 장이 넘는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당시에는 새로운 PC를 구입하면 하드 디스크에 반드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깔려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당시에는 이 게임을 통해 RPG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았다.
내용면에서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게임이었다.
초보자들도 전혀 문제 없는 쉬운 난이도와 동시대의 다른 일본 RPG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화려하고 세밀한 그래픽, 개성 있는 주인공들이 엮어가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숨겨진 이벤트. 다른 무엇보다도 게임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그리고 이후에 손노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던) 각종 패러디와 코믹함까지.
여러 장점들은 게이머로 하여금 엔딩을 본 후에도 몇 번이나 다시 게임을 하도록 만드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게임의 숨은 주인공(?) 패스맨.
손노리 이원술 대표이사가 모델인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 스토리 다이제스트
팔미라의 젊은 기사 로이드 폰 로이엔탈은 지휘관 랜스와 함께 왕가의 보물인 ‘카이난의 지팡이’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수송하던 중 페라린의 기사 프란시스에게 습격을 받아 지휘관인 랜스와 부하들이 모두 전멸하고 지팡이를 빼앗긴다.
부상을 입은 로이드는 프란시스의 망토에 있던 그리핀 문장을 유일한 단서로 삼고 지팡이를 되찾기 위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한국 게임계에 끼친 영향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만트라의 <이스2 스페셜>(일본 팔콤의 <이스2>를 국내 기술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등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다른 외국산 RPG들을 압도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는 한동안 RPG 개발 붐이 일어났다. RPG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후 손노리는 1995년 횡스크롤 액션 게임 <다크사이드 스토리>를 만들고, 1997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외전격 신작 <포가튼 사가>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2002년 국산 휴대용 게임기 GP32용으로 1편의 리메이크 작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R>을 내놓았다. (어스토R은 PC 및 PSP용으로도 이식 되었다.)

1편의 리메이크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 GP32와 PC, PSP 버전이 발매됐다.
■ 최초의 국산 RPG는? ‘최초의 국산 게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정확한 해답을 얻기 힘들지만, ‘최초의 국산 상용 패키지 게임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1987년, 국내에 저작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얼마 되지 않아 출시된 애플용 RPG <신검의 전설>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남인환 씨(현 이온소프트)가 개발하고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였던 ‘아프로만’에서 출시한 이 게임은 <울티마>와 유사한 형식의 RPG였다. ‘최초의 국산 RPG’, ‘최초의 한글 지원 게임’ 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 또한 달고 있으니. 어찌 보면 국산 게임의 역사는 RPG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최초의 국산 상용 게임 <신검의 전설>.
하지만 이 게임은 흑백 게임이었고, 8비트 애플용 게임이었다. 그렇다면 최초의 ‘IBM PC용 국산 RPG’는 무엇일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일까? 아니다. 의외로 많은 유저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최초의 국산 IBM-PC용 RPG는 1993년 출시된 에이플러스의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전>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원작으로 한 RPG게임으로 당시 아케이드 일색이었던 국내 게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게임성 면에 있어선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시스템 역시 RPG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끄는 데는 실패하고 만 비운의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최초의 IBM-PC용 국산 RPG <홍길동전>. |
| 한국형 RPG의 완성: 포가튼 사가 (1997년) |
1997년 발매된 <포가튼 사가>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후속작(엄밀히 따지면 ‘외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게임이다.
발매 전 거듭된 출시일 연기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도 했던 이 게임은 MS-DOS 시절 마지막 국산 대작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국산 RPG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명작’ ‘버그 투성이의 졸작’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게임이기도 하다.

<포가튼사가>의 게임 장면.
<포가튼사가>는 무엇보다 엄청나게 방대한 이벤트와 퀘스트, 그리고 높은 자유도가 특징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동료로 누구를 선택했는가, 게임 플레이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리고 이벤트를 어떤 순서로 진행했는가에 따라 볼 수 있는 서브 이벤트가 매번 달라졌다.
서브 이벤트의 분량은 최소 게임을 3번 이상은 클리어해야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방대했는데, 재미 또한 훌륭한 편이었기에 호평을 받았다.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지 않아도 서브 퀘스트만으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자유도를 중시하는 미국식 RPG와 스토리를 중시하는 일본식 RPG의 장점을 적절히 섞었다는 점에서 ‘한국식 RPG의 특성을 확립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게임 곳곳에 깔린 손노리식 유머와 위트, 그리고 별도의 음악 CD를 만들 정도로 신경을 쓴 사운드는 게임의 감칠맛을 한껏 높여주었다.
다만 이 게임은 이후 ‘손노리’ 하면 생각나는 가장 큰 이미지 중에 하나인 ‘버그의 전설’을 확립했다는 오명도 안고 있다. 발매 이후 수 차례의 패치가 나오고 나서야 겨우 게임 플레이가 원활해질 절도로 버그가 심했는데, 몇 가지는 끝내 고쳐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참고로 손노리는 게임 발매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아예 별도의 ‘버그 해결 완전판’을 따로 출시 했다)
버그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지만 <포가튼 사가>는 ‘한국식 RPG’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서양 RPG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고 주사위를 굴려 능력치를 결정해야 한다.

<포가튼 사가>의 등장인물 중 일부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에도 등장한다. 서브 이벤트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세로라'는 2편에서 조연급 캐릭터로 등장한다.
| 14년 만의 부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 (2008년) |
<포가튼 사가> 이후 손노리는 더이상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후속작을 내지 않았다. 물론 GP32와 PC, PSP로 나온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이 있기는 했지만, 핵심 내용과 시스템은 1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후속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손노리가 <화이트 데이> 발매 이후 ‘손노리’와 ‘엔트리브 소프트’로 양분되면서(이후 손노리 모바일 팀이 ‘아이언노스’로 한 번 더 분리 독립한다) <어스토>는 말 그대로 ‘전설’로 묻힐 가능성이 높아지기만 했다.
하지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에 대한 계획은 조용히,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지난 2006년,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소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바로 SK텔레콤의 3D 모바일 게임 플랫폼 ‘GXG’용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였다.

GXG로 등장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
이 게임은 당시 유명 게임의 컨버전 작품을 주로 선보이던 GXG 플랫폼에서 거의 최초로 등장한 ‘창작 게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게임 퀄리티 역시 모바일 게임 치고는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GXG는 게이머들 중에서도 극 소수만 즐긴다는 점, 그리고 모바일 플랫폼의 한계상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거의 신화처럼 떠받드는 기존 유저들이 만족하기에는 2% 아쉬운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꺾일 <어스토>가 아니었다. 손노리 모바일 팀에서 분리 독립한 아이언노스(Ironnos → ‘Sonnori’ 알파벳 순서를 바꿔서 만든 회사명)가 지난 2007년 PSP용으로 새롭게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바로 23일 발매되는 PSP용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다.


PSP용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의 스크린샷.
새롭게 태어나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2>는 GXG 버전과 다르게 게임의 볼륨과 전투 시스템, 그래픽 등 모든 부분을 새롭게 기획했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제작됐다.
개발사에서는 전략성과 액션성이 강조된 전투 시스템을 선보이고, 한층 더 다듬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통 RPG’의 재미를 유저들에게 선사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는 출시 후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14년 전의 전설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가 ‘어스토니시아’의 이름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주목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 오프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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